누구나 행복추구를 목표로 살아간다. 어제보다는 오늘 그리고 내일 더 행복하기를 바란다. 나와 더불어 자녀들과 후손들이 더 행복하기를 바란다. 현재 한국의 1인당국민소득은 36,700달러로 이것은 1992년에 비하여 5배나 높고 인구 5천만 이상의 국가 중 6위에 해당한다. 일본 대만보다 많다. 그러나 한국 국민의 행복지수는 세계 54위로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경제성장만으로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국민의 행복지수 순위가 높아지지 않는 것은 누구 책임인가? 국민 개인 탓인가, 아니면 국가나 사회환경 때문인가?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속에서 살고 있다. 이 시장제도 때문인가? 권력이 사적이익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인가? 과연 행복추구권의 개선은 누구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나?
심리학자들의 행복 공식
행복을 추구하는 삶은 인간의 본성인 이성과 감성을 발현하는 것이므로 좋은 삶(good life)이라 할 수 있다. 셀리그만(Seligman)은 행복은 기쁨, 흥미 등 긍정적 정서와 뜻있는 일을 하며 성취 하는 등 심리적 안정, 그리고 좋은 사회적 관계 등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류보미르스키(Lyubomirsky)는 행복의 구성요소를 유전적 요인, 의도적 활동, 환경 등의 3가지 요소의 합이라는 공식을 발표한 바 있다. 그는 개인의 타고난 유전적 요소가 50%, 개인의 노력과 선택이 40% 정도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이고 소득, 결혼, 직업 등 환경적 요인은 10% 영향을 준다고 하였다. 거의 90%가 개인의 타고난 유전적 요소와 각자의 노력과 행동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행복은 개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주로 달려 있다는 것이 이들 유명 심리학자들의 견해다.
과연 그러할까? 이 이론은 평화시대 개인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행복에 관한 심리학적 모델이라고 평가한다. 국가의 역할이나 사회제도 등의 역할을 간과한 것은 아닌가?
행복 추구권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들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제도에서 살고 있다. 시장경쟁을 통하여 삶을 설계하고 부를 추구하며 사람들과 사회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이러한 시장제도는 부의 증가에 탁월한 기능을 발휘한다. 그러나 시장경쟁은 승패를 가르고 결과적으로 사회구성원의 빈부격차를 만든다.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서민으로 나누는 양극화를 촉진한다. 이 제도가 가지고 있는 결함이다. 나라 전체로 소득이 올라가도 국민 간의 상대적 격차가 심한 격차사회가 되면 많은 사람이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다. 다 같이 어렵게 살아 의식주의 기본수요가 충족되지 않았던 시대보다도 1인당 소득이 선진국 수준이 된 시대에 행복지수가 더 나빠지는 것은 이러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결함 때문일 수 있다.
정부가 잘못해서 행복지수가 나빠지기도 한다.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민주 정부 혹은 독재 정부냐에 따라 행복지수가 달라질 수 있다. 군주국이라 해도 공익우선으로 정치를 하는 경우에는 행복지수가 나쁘지 않을 수 있다. 민주공화국이라도 실질적 독재가 지속되면 행복지수가 나빠진다. 공익보다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 보듯이 민주 헌정을 중단하고 장기집권을 하는 정부하에서 국민은 행복하지 않았다. 한국의 현대사는 이러한 헌정질서 파괴 세력과 시민 간 싸움의 경험으로 얼룩져 왔다. 4.19 혁명, 72년 유신반대 투쟁, 5.18 민주화 운동, 6.10 항쟁, 촛불시위, 12.3 계엄반대 등 해방 후 행복을 위한 긴 투쟁의 역사가 있었다.
외적의 침략이나 국내 전과 같은 전쟁도 국민의 행복추구를 억제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식민지가 되어 나라가 없어지면 그나마 국민을 위한 정치 행정은 사라지기 때문에 국민의 행복 추구는 멀리 날아간다. 이때의 시민은 전쟁종식과 독립운동 등으로 일생을 보내기도 한다.
행복추구권은 이같이 정치제도나 신분제도, 경제제도, 전쟁과 같은 안보 상황, 그리고 재난 등의 환경적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할 것이다.
개인은 호락(好樂)극대화 추구로 행복에 도전
인간은 이성과 감성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이들을 충분히 발현시켜 좋은 삶을 살려고 한다. 공자의 지호락(知好樂) 중에서 지는 이성적 인식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고 호와 락은 주로 감성을 자극하고 확대하여 기쁨을 얻는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음악과 미술 드라마 등 예술 작품과 접하면 감각의 불꽃(촉)이 발동하여 호를 넓혀갈 수 있다. 물론 맛있는 음식, 주택, 여행 등을 통해서 감성의 범위는 확대될 수 있다. 각자 하고자 하는 일 되고자 하는 바를 성취하는 삶을 살 때 행복에 이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감성을 이웃과 함께 나누면 기쁨은 더욱 커져 공동의 에너지로 확산된다. 필자는 이를 호락극대화(Joy max)라 정의한 바 있다. 이는 고전경제학에서 말하는 효용 극대화(Utility max)와 대비되는 표현이다. 효용극대화는 주어진 소득과 시장에서 정해진 가격으로 어떤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나의 만족을 극대화하는가 하는 개념이다. 사람이 호락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소득만이 아니라 건강, 자유, 소통 관계 등이 잘 뒷받침되어야 한다. 건강하지 않고서는 생명체의 감성 자체를 유지할 수 없고 자유가 없다면 그러한 선택에 제약이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들이 이루어지는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사람은 호락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통과 관계 개선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개인은 호락극대화를 통하여 삶을 행복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나의 호락극대화를 타인의 호락극대화와 긍정적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타인에 해가 된다면 이는 올바른 행복추구라 할수 없으므로 공동체는 이를 규제하게 된다.
한국의 행복지수가 오랫동안 정체하고 있는 이유는 호락을 가져다주는 요인 중 자유도가 낮고 좋은 소통의 환경이 마련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N포 세대라 할 수 있는 젊은 세대는 그들의 소득으로 교육, 직업, 주거 선택의 자유도를 높이기가 힘들다. 세대 간 갈등은 OECD국가 중 31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1인당 소득은 선진국 수준으로 올랐으나 여전히 매년 백만여 소상공인 자영업자가 문을 닫는다. 소득격차가 오랫동안 확대되어 굳어졌기 때문에 생기는 불평등도 심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성장하면서 불평등과 신분격차를 고착시켜 마치 조선시대 사농공상의 세습제 신분사회의 출현을 연상케 한다. 해방후 90년대까지는 소득이 아직 낮아도 신분평등과 신분이동의 가능성이 있는 미래 희망 사회였으나 이제는 그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자살률도 세계적으로 높다. 남북분단과 미중러 등 대국들이 대결하고 있는 중심에 한국이 위치하고 있어 안보가 항상 근심거리라는 지정학적 불안도 있다. 이는 안보를 둘러싼 사상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은 행복추구라 할 수 있는 호락극대화를 개인의 노력과 선택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게 한다. 정부와 사회가 이를 해결하는 데 환경을 만드는 큰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는 무엇을 하여야 하나
가난한 시대 오랫동안 국가와 사회가 최고의 목표로 삼았던 경제성장이 행복지수를 높이지 못하고 있다면 경제성장 대신에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한다. 물적성장보다 인간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으로 사회발전 목표를 바꾸어야 한다. 이는 물적성장도 중요하지만 그 위에 인간존중의 가치 실현을 최고의 목표로 올려 놓아야 가능한 일이다. 사회적으로 인간존중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개인적으로 호락극대화를 성취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인간이 존중받으려면 생명의 존속과 번영이 보장되어야 하고, 개인의 자유가 최대한 확대되어야 하며, 그리고 이웃간 소통과 관계 개선을 위한 신뢰기반이 구축되어야 한다.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신분평등이 이루어질 때, 경제성장이 이루질 때, 견제와 균형 제도가 확립될 때, 법치가 제대로 이루어질 때 생명, 자유, 신뢰와 같은 인간존중의 가치가 살아났다. 이러한 문화속에서 개인별로 호락극대화를 추구하는 에너지가 발산되어 행복도를 높일 수 있었다.
현재 한국사회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기 위해 해결할 일을 요약하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속에서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 해소, AI 시대를 대비하여 일자리 창출과 경제의 지속성장, 분열과 대립을 막아주는 통합의 길 찾기, 안전을 위한 내외정세 변화에 현명한 대비 그리고 N포세대의 문제해결과 미래 비전 제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당면한 사회경제적 현상들에서 성과를 내도록 정부는 사회적 기술을 개발하여 실행하는 것이 긴요한 시기이다.
[출처] 국민의 행복추구권은 누가 보장하나